달팽이집


다시, 익숙한 풍경과 이별이다.

책 박스를 풀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또 짐을 꾸린다. 짐을 꾸릴 때마다 버리는 것들도 만만치 않은데
어느새 그에 비례해서 늘어난 짐들을 포장하고 꾸린다.

지상의 방 한 칸!
고단한 이삿짐을 이고 지고 떠돌아 다니며
낯선 풍경들과 또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시간.

이제 당분간 작업실 이사는 없을 것이다.
또 다시 무거운 짐을 등에 꾸리고 풀어 놓는 행위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리 넓지 않은 복층식 오피스텔 하나를 샀다.

계약에서부터 이전까지의 생소하고 알고 싶지 않은 절차와 서류들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혀왔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제 마지막 짐들을 꾸리고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최종 점검을 앞두고 있다.

옛작업실의 먼지를 쓸어 버리다
창을 열고 주저 앉는다.

모든 이별의 감정엔 애틋함이 묻어 나는가 보다.
끊임없이 눈으로 쓰다듬고 되새겼던 풍경들.

꽃잎이 분분하게 흩날리는 날 아름답게 손흔들며 작별하리라던 기대는
봄같지 않은 봄날씨로 깨어지고 말았다.

담배 한대 물고 달빛 밝은 작업실 옥상 마당을 거닐때
빈 달팽이 집이 밟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덧글

  • yunz 2010/05/04 10:29 # 답글

    어쩌다 해가 반짝 떴다가, 곧이어 흐린 일상이 되어버리는 봄이예요. 이런 무거운 날씨에 이사까지 하셨네요. 그...작업실, 도시의 섬처럼, 원두막처럼 매력적이던데(물론 거진 제 상상이지만) 제가 다 마음이 적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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