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처럼



작업실을 옮기면서 이리저리 굴러 다니던 근원을 알 수 없는 스피커를
작업실 처마에 달았다.

스피커의 모양만으로 따지자면 과연 저곳에서 소리가 나올까라는 의심에서부터
잡음과 혼탁한 소리들이 버무려진 극악의 소리를 예상하게 한다.

대충 짐작만으로 스피커의 나이를 40여년 정도 예상은 하지만 어디에서 시작되어
지금 이 모습으로 내게 온 것인지 그 궁금증을 해결할 일이 없다.

창고에 굴러 다니던 새장을 꺼내 그 속에 스피커를 넣어 버렸다. 그리고 그 밑에
담쟁이를 심어 새장을 감싸도록 해 두었다.

초록이 가득한 새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듣는다면 볼품없는 스피커에서
어떻게 저렇게 맑고 또렷한 소리가 들리는지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분명히 어느 뿌리 깊은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족보를 잃어버린 스피커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제 다시 해바라기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안락 의자를 다시 꺼내 처마 밑에 두고
나른한 오후의 시간들을 새장 스피커와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이제 다시 작업실 안에서뿐만 아니라 작업실 옥상에서는
소리들이 새들처럼 날아 다닐 것이다.

"왜 스피커를 새장에......"라는 질문에 '소리도 새처럼 날아다니기 때문에 잠시 내가 가둬 두는 것'이라고

대충 말해버렸다.

 

그 이후 작업실의 새장 속에서는 '소리'가 자라고 있다.

'불륨 키워봐!'라고. 40여년이나 훌쩍 지나고서도 깊은 소리가 나는 '볼륨' 하나 새장 속에서 키우고 있다.

 

절대 작업실에서는 '소리 좀 줄여봐!'라거나 '볼륨 좀 죽여봐!'라는 말은 금물.


덧글

  • yunz 2010/03/18 03:50 # 답글

    아- 정말, 멋져요... 작업실도, 소리를 잡아둔 새장도, 안락의자와 해바라기도, 조만간 다가올 나른한 오후의 시간도.
  • 바람과산다 2010/03/18 18:15 # 답글

    바람이 훈훈한 저녁이면 가끔씩 처마 밑에서 음악을 들으며 바베큐 파티도 열립니다. 도심이지만 미군부대로 인해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낮은 지붕의 풍경들을 바라보는 밤풍경을 추천합니다.
  • yunz 2010/03/20 20:18 #

    추천해주신 밤풍경은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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